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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간 후기저자 이야기
1. 『낙동강 상류의 실존 왕국, 고녕가야』의 저술 동기는?
첫째“한 실존역사의 매몰과 방치에 대해 나 자신이 느끼게 된 상실감에 대한 치유 처방이자 복구 의지”에서 비롯되었다. 고녕가야에 대해 SNS에선 하나같이 i) 정사 삼국사(三國史)에서 한 줄, 야사 삼국유사(三國遺事)에 한 줄, 행정자료집인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한 줄, 함창김씨의 족보인 고녕가야대관(古寧伽倻大觀)에 몇 줄, 이외 함창읍지(咸昌邑誌)에서의 한 줄이 전부다. ii) 이병도 박사는 고녕가야를 함창(咸昌)이 아닌 웅주거목(雄州巨牧)인 진주(晉州)로 비정했다. 왜 이렇게 기록이 빈약하고 자료가 없었을까? 라고 자신에게 스스로 자격지심(自激之心)을 느꼈다.
둘째 현재 780여 곳에 2만 기의 가야 고분군이 현존하고 있다. 이들 모두가 역사적인 제1차적 자료다. 그러나 정리되어 있지 않고, 학문적으로 가공되지 않는 자료다. 그래서 가야사는 자료가 거의 없다고 한다.“가야 무덤 속의 가야사 교과서”를 보게 되는 눈부터 뜨자고 자신에게 다짐했다.
그렇다면 자격지심을 추진력으로 하여“무덤 속 역사 교과서(history textbook in the grave)”를 헤집어 보자고 생각했다. 즉 역사적인 장면(場面)이나 굵은 선은 만들 수는 없더라도 사소한 한 점(tiny a point)이라도 찍는 계기라도 만들어 보고 싶었다.
2. 책의 주요 내용이 무엇인지 설명 부탁드립니다.
역사는 첨단과학이다. 고고학에서는 현대물리학의 반감기(半減期)를 이용해서 절대연대를 측정하고,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시설물의 축성과정에서 계량고고학을 이용한다. 따라서 과거 역사유적에 대한 토목공학의 탄성추계를 한다. 옛날엔 춘추필법과 고귀야(古貴也) 혹은 후고박금(厚古薄今) 원칙에서 역사 사료의 학술 가치를 저울질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역사적 사실 하나를 비정(比定)하는데도 i) 사회과학인 신의칙, 경험칙, 논리칙 및 실험칙 등을 무시할 수 없다. ii) 델파이 신전의 신탁이 아닌 언어학(발음학, 의미론, 화성론 등), 어원(범어, 타밀어 등), 표기(이두, 차음, 차의 등), 지명유래, 위정자의 의도 등을 매트릭스 모형화(matrix model)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가야사에 국왕의 재위기간에서 김수로왕은 157년, 김고로왕 115년이나 된다. 물론 일본서기에서도 70~120년의 왕조가 있다.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청동기 시대 평균수명 38세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잣대로 단순하게 재위 기간을 판단하면 역사 사실(non-fiction) 아니라 소설(fiction)이다. 가야연맹체 국가 혹은 제후국에서는 맹주국의 윤허가 떨어져야 왕조가 바뀐다. 따라서 문자기록의 액면보다 그렇게 기록해야 하는 배후를 읽어야 한다. 고녕가야에서 현재와 대화를 할 부분이 많다. 단적으로 사도성(沙道城)에 사벌국(沙伐國) 호민 80호를 이주시킨 건 오늘날 휴전선 대성동(臺城洞)‘자유의 마을(戰略村)’이란 현실을 비교하여 들여다보게 한다.
3. 유사한 저서와 이 책만의 특별한 점이 있다면?
최고 전문가의 흔한 실수가“산부인과 의사의 과오”다. 속된 말로“한 구멍만 들여다보다가 하는 실수”다. 요사이는“전문가의 저주(The Curse of the Expert)”라는 표현을 쓴다. 이런 오류를 최소화하고자 공저를 했다. 역사적인 사실 하나를 놓고도 과거와 현재는 물론 동양과 서양을 통시적(通時的)이고 동시적(同時的)으로 분석해 봤다.
물론 꼭 필요하지도 않은 자료라고 생각할 수 있는 것까지도 언급했다. 사소한 실마리라도 다양하게 생각을 해보자는 의도였다. 역사적 사실만이 아닌 문학, 신화 혹은 최근 시사적인 문제까지, 아니 문학 심리학과 같은 자료까지도 수합 정리했다. 단지, 새로운 안목으로 보자는 의도다.
과도한 욕심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를 기반으로 많은 파생연구도 할 수 있도록 원문, 인명, 지명, 사건명 등엔 원어(영어, 일어, 한자)로 괄호처리를 했다. 읽고자 하는 의욕을 떨어뜨릴 단점이 있을 수도 있다는 걸 알고도 그렇게 했다.
4. 누구에게 추천하고 싶으신가요? 그리고 그 이유는?
먼저, 죄송하다는 말씀부터 드린다. 독자대상을 설정하고 눈높이 맞춰서 글을 쓰지 않았다. 때로는 과도할 수도 있고, 광범위할 수도 있다. 먼저 목차부터 읽어보시고, 읽고 싶은 부분을 찾아서 읽다가 다시 읽을 필요성과 의욕이 있다면 한 장(章)씩 더 읽어가기를 바란다. 연구하시는 분은 색인표(index)에서 찾고자 하는 단어가 있는 페이지(page)를 찾아보시고, 줄거리를 파악하고자 할 땐 해당 장(章)을 읽기를 권한다.
욕심 같아서는 연필을 뾰족하게 깔아서 밑줄 쳐가면서 읽기를 바라지만, 요즈음 독서는 처음부터 끝까지 통독하거나 외울 수 있게 몇 차례 정독하기를 권하지 않는다. 수험 서적이 아니기에 i) 읽고 싶은 부분을 보다가 ii) 다시 읽고 싶을 때 찾아보면 된다. 사실 많이 안다고 밥맛이 좋거나 유식한 사람이 되는 상식이 아니다. 고녕가야(古寧伽倻) 역사는 함창(고녕)김씨 후손들도 잘 모르고 있기 때문이다.
5. 책을 출간하시면서 느낀 점이 있다면?
옛날부터 책을 많이 읽고 고정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을 두고 고지식하다는 표현을 했다. 조선 시대 땐 문약(文弱)하다고 했다. 그래서‘무식이 용감이다(Ignorance is Bravery)’. 요사이 우리나라에선“배운 자의 무식(doctoral ignorance)”이 사회적 최악이다. 대표적으로 역사를 이용한 족보 속 선인들을 둔갑시키고, 아직도 신민(臣民)의 도리를 다함에 앞장서고 있다.
지식이란 필요할 때에 찾아보고 익히면 된다. 과거 역전에 박보장기 야바위꾼에게 용돈을 다 털어 넣었다. 열을 받아 돌아갈 수 없어 인근 서점에서 박보장기 묘수풀이를 찾아 해당 수를 익힌 뒤에 그 야바위꾼을 찾아가서 차비로 배팅을 하여 본전을 다 찾았다. 이런 정도로 찾아볼 수 있으면 된다.
사실 고녕가야는 함창김씨의 시조인 고로왕(古露王)의 왕조역사다. “고녕가야대관(古寧伽倻大觀)”이라는 족보마저도 각종 고서에서 발췌한 내용 10여 면이 전부였다. 그러니 역사학자나 전문가들은 자료가 없다고 할 수밖에 없다. 학자들은 당장에 입맛에 맞게 가공된 자료가 아니면 하나도 없다고 한다. 나 역시 그렇게 말해 왔다. 재야에 묻히고 보니 뒤늦게 철이 드는 모양인지, 어둠을 탓하기보다 한 자루의 촛불이라도 불을 밝히자는 마음을 가져 본다.
6. 독자에게 전하고자 하는 한 마디는?
“사람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든다(People make books, and books make people).”는 교보문고의 구호를 우리는 만난다. 물론 재치있는 개그맨 김재동(金濟東, 1974년생)씨는“사람이 만든 책보다, 책이 만든 사람이 더 많다.”고 했다. 2010년 8월6일 현재까지 지구상에 129,864,880권의 책이 있다. 지구상에 생존했던 인류는 80억 명으로 추정하고 있다. 물론 이제까지 살아온 인류는 500억 명으로 추계한다. 이를 기반으로 환산하면 책 1권이 385명 정도 의 사람을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고녕가야(古寧伽倻)에 대해, 그대가 책장이라도 넘겼다면 80억 명의 현생 인류 가운데 385명의 한 사람이 되는 영광을 얻는다. 응당 이 책을 읽는 사람에게 축복을 내리고 싶다.
향토 사학자가 밝혀낸 고녕가야 이야기
역사는 첨단과학이다. 고고학에서는 현대물리학의 반감기(半減期)를 이용해서 절대연대를 측정하고, 동일성의 원리에 따라 시설물의 축성과정에서 계량고고학을 이용한다. 따라서 과거 역사유적에 대한 토목공학의 탄성 추계를 한다. 옛날엔 춘추필법과 고귀야(古貴也) 혹은 후고박금(厚古薄今) 원칙에서 역사 사료의 학술 가치를 저울질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역사적 사실 하나를 비정(比定)하는 데도 i) 사회과학인 신의칙, 경험칙, 논리칙 및 실험칙 등을 무시할 수 없다. ii) 델파이 신전의 신탁이 아닌 언어학(발음학, 의미론, 화성론 등), 어원(범어, 타밀어 등), 표기(이두, 차음, 차의 등), 지명유래, 위정자의 의도 등을 매트릭스 모형화(matrix model)해 종합적으로 판단한다.
역사는 과거와 현재의 대화다. 가야사에 국왕의 재위 기간에서 김수로왕은 157년, 김고로왕 115년이나 된다. 물론 일본서기에서도 70~120년의 왕조가 있다. 우리나라 통계청에서 청동기 시대 평균수명 38세로 추정하고 있다. 이런 잣대로 단순하게 재위 기간을 판단하면 역사 사실(non-fiction) 아니라 소설(fiction)이다. 가야 연맹체 국가 혹은 제후국에서는 맹주국의 윤허가 떨어져야 왕조가 바뀐다. 따라서 문자 기록의 액면보다 그렇게 기록해야 하는 배후를 읽어야 한다. 고녕가야에서 현재와 대화를 할 부분이 많다. 단적으로 사도성(沙道城)에 사벌국(沙伐國) 호민 80호를 이주시킨 건 오늘날 휴전선 대성동(臺城洞) ‘자유의 마을(戰略村)’이란 현실을 비교하여 들여다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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